오세열 작가 개인전
5310 : 난 자리에 드는 무심한 위로
누구나 어린 시절 아픔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아픔이 마치 어른이 되는 관문인 양 우리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고 만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마음에 흉터라는 나이테를 겹겹이 쌓아 올려야 가능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 스스로 상처를 내어 과거의 아픔을 반추하는 작가가 있다.
오세열의 회화는 선단이 훑고 간 자리마다 피어난 숫자들로 가득하다. 노년의 작가가 온 힘을 다해 숫자를 새기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해방둥이로 태어나 전쟁을 겪은 오세열은 거대한 국가적 폭력과 억압 사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세대를 관통하는 커다란 트라우마 앞에서 정신적·육체적 황폐함을 목도한 그에게 숫자는 버텨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포함하는 기호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간이 멈춰있다. 그래서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이가 완전한 정신적 열반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오세열은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선으로 1부터 10까지 끊임없이 나열하며 지난날의 자신을 위로한다. 그에 의하면 숫자는 어린아이가 문자보다 먼저 배우고 스스로 그리는 첫 번째 기호다. 심지어 이 기호는 지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모든 인류에게 유효하다. 그래서 오세열의 숫자에 담긴 위로는 아픔과 슬픔을 느껴본 모두에게 도달되는 메신저인 것이다.
예술가에게 캔버스란 자신의 확장된 정신 체계를 담은 신체와 같다. 오세열은 자신을 베어내어 상흔을 남긴다. 유화 물감의 화려한 기름기를 다 짜내서 피폐화하는 것만으로 모자란지 끊임없이 캔버스를 긁어내는 그의 행위는 마치 시대적 아픔을 교감하려는 아우성의 제스처로 들린다. 또한 작가의 작품은 장애를 가진 주인공과 버려진 소재를 활용해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미지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의미 없는 것에서 특별함을 찾아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가의 숙명을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오세열의 위로는 유년 시절 전쟁에 대한 자신의 기억에서부터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시대의 모두를 아우른다.
때때로 숫자는 권력이 되어 만족과 상실 사이를 맴돈다. 하지만 오세열은 이러한 세태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아픔을 나눌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숫자로 증명되는 정답이 아니라 공감과 위로가 아닐까.
세상은 너무 날카로워서 작은 상처에도 부서지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상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백발이 된 어른 오세열은 자신의 흉터를 아로새기며 현시대의 상처를 보듬는다. 갤러리X2와 아트조선스페이스가 함께하는 전시<5310>을 통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길 바란다.



















